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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케의 역사: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변천

사케의 역사: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변천

사케는 언제, 어떻게 탄생했을까? 야요이 시대의 구치카미자케부터 현대의 크래프트 사케까지, 2000년 이상의 역사를 따라갑니다.

역사 문화 전통 양조 기원
작성: delicious sake 편집부

사케의 역사: 2000년의 이야기

sake-history

한 잔의 사케에는 2000년의 시간이 가라앉아 있습니다.

쌀을 씹어 항아리에 뱉어 넣던 야요이 시대의 마을 사람부터, 뉴욕의 바에서 다이긴조를 따르는 현대의 바텐더까지. 그 사이에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시행착오가 가로놓여 있습니다. 여기서는 그 긴 여정을 시대의 흐름을 따라 짚어보려 합니다. 연호와 인물의 이름은 이를테면 이정표입니다. 그것을 따라가며 술이 어떻게 모습을 바꿔왔는지를 뒤쫓아 봅시다.

벼와 함께 시작되었다 — 야요이에서 나라로

이야기의 출발점은 벼농사의 전래에 있습니다. 대륙에서 논벼 농사가 일본 열도로 전해진 것은 대략 기원전 수 세기 무렵으로 여겨집니다. 쌀이 여물면 내버려 두어도 야생 효모가 붙어 발효가 시작됩니다. 사람이 그것을 알아채고 의도적으로 술을 빚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가장 원시적이라 여겨지는 제법이 ‘구치카미자케(口噛み酒)‘입니다. 찌거나 삶은 쌀을 입으로 씹어 침에 든 효소로 전분을 당으로 바꾸고, 거기에 야생 효모가 작용해 발효합니다. 애니메이션 영화로 그려지며 널리 알려졌지만, 사실 이것이 일본 열도에서 얼마나 일반적이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신사(神事) 속에서 무녀가 담당한 특별한 술이었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이윽고 씹지 않고 쌀을 당화시키는 방법이 등장합니다. 곰팡이의 일종인 누룩곰팡이를 찐 쌀에 번식시킨 ‘누룩(코지)‘입니다. 8세기 초에 편찬된 『하리마국 풍토기(播磨国風土記)』에는, 신에게 바친 쌀이 젖어 곰팡이가 피었고 그것으로 술을 빚었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는 누룩을 사용한 술 빚기를 짐작케 하는, 일본 최고(最古)급의 기록으로 꼽힙니다. 『고사기』와 『일본서기』에도, 스사노오가 야마타노오로치를 술로 취하게 해 퇴치하는 이야기를 비롯해 술은 자주 모습을 드러냅니다. 나라 시대에는 술이 이미 신사와 권력의 중심에 놓여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율령 국가의 술 — 헤이안의 양조 기술

헤이안 시대가 되면 술 빚기는 국가의 관리 아래에서 세련되어 갑니다. 궁중에는 ‘조주시(造酒司)‘라는 관청이 놓여, 조정 의식에 쓰는 술을 전문으로 빚었습니다. 10세기 전반에 완성된 법령집 『엔기시키(延喜式)』에는, 술의 종류와 빚는 법, 원료의 배합까지 세세히 적혀 있습니다. 맑고 깨끗한 ‘고슈(御酒)‘부터 달콤한 ‘레이슈(醴酒)‘까지, 목적에 따라 여러 종류의 술을 나누어 빚었습니다.

이 시대의 양조 기술은 상상 이상으로 고도였습니다. 쌀을 여러 번 나누어 담그는 발상이나, 가열해 보존성을 높이는 궁리의 싹이 이미 이 무렵의 기록에서 읽힙니다. 술은 아직 서민의 것이 아니라, 조정과 그것을 떠받치는 한정된 사람들의 것이었습니다.

‘승방주’의 황금기 — 절이 갈고닦은 기술

헤이안 말기부터 무로마치에 걸쳐, 양조 기술의 최전선에 선 것은 사원이었습니다. 큰 절에는 지식도 자금도 노동력도 갖춰져 있어, 거기서 빚어지는 술은 ‘승방주(僧坊酒, 소보슈)‘라 불리며 최고급품으로 여겨졌습니다. 가와치의 곤고지가 빚은 ‘아마노자케(天野酒)’, 나라의 절들이 낳은 ‘남도 모로하쿠(南都諸白)’ 등이 그 대표격입니다.

특히 나라의 쇼랴쿠지(正暦寺)는, 훗날의 청주로 곧장 이어지는 기술을 여럿 낳았다고 전해집니다. 누룩쌀에도 담금쌀에도 정백한 쌀을 쓰는 ‘모로하쿠(諸白) 빚기’, 유산균의 힘으로 잡균을 억누르는 술밑의 원형 ‘보다이모토(菩提酛)’, 그리고 부패를 막는 가열 처리 — 이러한 궁리가 맑은 술을 안정적으로 빚는 길을 열었습니다. 유럽에서 루이 파스퇴르가 저온살균을 과학적으로 설명하기보다 약 300년이나 앞선 일입니다.

양조장의 등장 — 무로마치, 장사로서의 술

무로마치 시대에 들어서면 술은 절의 손을 떠나 마을의 장사가 되어 갑니다. 교토 시중에는 수많은 ‘양조장(造り酒屋)‘이 늘어섰고, 막부는 거기에 세금을 매겼습니다. 14세기 후반의 기록에서는, 교토에만 300채가 넘는 술집이 있었다고 합니다. 술은 이제 신사나 귀족만의 것이 아니라, 도시 경제를 돌리는 상품이 되어 있었습니다.

여기까지의 발걸음을, 한번 시대순으로 늘어놓아 봅시다.

시대사건
기원전 수 세기벼농사의 전래. 쌀술이 태어남
8세기(나라)『하리마국 풍토기』에 누룩을 쓴 술 빚기의 기록
10세기(헤이안)『엔기시키』에 조주시와 술의 제법이 기록됨
15~16세기(무로마치)승방주의 전성. 쇼랴쿠지에서 모로하쿠·보다이모토 발달
17~18세기(에도)나다·이타미의 대두. 한조(寒造り)와 히이레 정착
1904년(메이지)양조시험소 설립. 술 빚기의 과학화가 시작됨
1943년급별제도 도입
1990년 전후특정명칭주 제도로 이행. 긴조슈 붐
21세기수출의 급증. ‘SAKE’가 세계어로

나다와 구다리자케의 시대 — 에도의 대량 생산

에도 시대, 술 빚기는 마침내 하나의 큰 산업으로 성장합니다. 무대의 중심은 효고의 이타미, 그리고 나다였습니다.

나다가 도약한 이유의 하나가 물에 있습니다. 1840년경, 나다의 양조가 야마무라 다자에몬이 특정 우물의 물로 빚은 술만 유독 뛰어나다는 것을 알아챘습니다. 훗날 ‘미야미즈(宮水)‘라 불리는 이 경수는 발효를 힘차게 밀어붙여, 칼칼한 카라쿠치(드라이) 술을 낳습니다. 에도 사람들의 취향에 딱 맞았습니다.

나다와 이타미에서 빚어진 술은 다루카이센(樽廻船, 술통을 실은 배)에 실려 에도로 운반되었습니다. 가미가타(교토·오사카 일대)에서 ‘내려오는’ 이 술은 ‘구다리자케(下り酒)‘라 불리며, 지방 술보다 격 높은 브랜드로 귀히 여겨졌습니다. 참고로, 시시한 것을 가리키는 일본어 ‘구다라나이(くだらない, 하찮다)‘는, 이 구다리자케에 못 미치는 술이라는 어감에서 왔다고도 합니다.

기술 면에서도 에도 시대에 현대로 이어지는 틀이 굳어졌습니다. 하나는 ‘히이레(火入れ)’. 빚은 술을 60도 전후로 가열해 살균하는 방법으로, 나라 사원의 일기 『다몬인 일기(多聞院日記)』에는 이미 16세기의 가열 처리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이로써 술은 오래 가게 되어, 멀리까지 운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 하나가 ‘산단지코미(三段仕込み)’. 원료를 한 번에 넣지 않고 세 번에 나누어 담가 효모를 안정적으로 늘리고 잡균의 번식을 억누릅니다. 이 방법은 지금도 청주 빚기의 기본으로 살아 있습니다. 나아가 겨울의 저온을 이용하는 ‘한조(寒造り)‘가 확립되고, 물레방아를 쓴 정미가 보급되면서 더 하얗게 깎은 쌀로 술을 빚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겐비시나 오토코야마처럼 지금도 이름이 남은 명주가 에도 사람들의 인기를 모은 것도 이 무렵의 일입니다.

대량으로 빚어져 값싸게 나돌게 된 술은, 이윽고 서민의 일상으로 내려옵니다. 에도의 마을에는, 가게 앞에서 됫박으로 파는 술을 선 채로 마시게 하는 ‘이자카야(居酒屋)‘가 생겨났습니다. 본래 술집 가게 앞에서 마시게 하던 ‘이자케(居酒)‘에서 발전한 형태로, 거기에 간단한 안주가 더해져 서민의 사교장이 되어 갑니다. 신사의 술, 귀족의 술, 절의 술로 시작된 사케는, 이 단계에서 비로소 일하는 사람들이 하루의 끝에 가볍게 기울이는 한 잔이 된 것입니다.

과학이 들어왔다 — 메이지의 근대화

메이지에 들어서면 술 빚기는 경험과 감의 세계에서, 과학의 빛을 받는 세계로 발을 들입니다.

양조 탱크를 확인하는 도지(杜氏)의 모습

1904년(메이지 37년), 국가가 양조시험소를 설립했습니다. 여기서, 그동안 양조장마다 이어져 온 기술이 미생물학과 화학의 언어로 다시 설명되어 갑니다. 뛰어난 양조장의 술에서 좋은 효모를 골라내 순수 배양해 각지에 배포하는 ‘교카이 효모’의 반포가 시작되자, 술의 질은 전국적으로 끌어올려졌습니다. 또한 유산을 인위적으로 더해 술밑을 빨리 완성하는 ‘소쿠조모토(速醸酛)‘나, 전통적인 기모토를 개량한 ‘야마하이모토(山廃酛)‘가 생겨난 것도 이 시대입니다.

술 빚기가 안정되어 양을 가늠할 수 있게 된 것은 국가 재정에도 큰 의미를 지녔습니다. 메이지부터 쇼와 초에 걸쳐, 주세는 나라 세수의 기둥 중 하나였습니다.

쌀이 부족했다 — 전중·전후의 삼증주

그러나 20세기 중반의 일본을 덮친 전쟁은 술 빚기에도 깊은 그림자를 드리웠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아래에서 쌀은 배급제가 되어, 술에 돌릴 쌀은 급감했습니다. 한정된 쌀에서 되도록 많은 술을 얻기 위해, 양조 알코올과 당류·산미료 등을 대량으로 더해 양을 늘리는 방식이 퍼집니다. 전후에 걸쳐 일반화한 이 ‘삼배증양주(三倍増醸酒)’, 이른바 삼증주는 양은 확보했으되, 맛의 면에서는 두 손 들고 칭찬할 만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케는 숙취가 심하다’, ‘다음날까지 남는다’는 후년의 이미지는 적잖이 이 시대의 술에서 비롯됩니다.

1943년(쇼와 18년)에는 전비 확보의 목적도 배경으로 ‘급별제도’가 도입되었습니다. 술을 특급·1급·2급으로 격을 매기고 등급마다 세율을 달리하는 구조입니다. 다만 이 등급은 양조장이 심사에 술을 내느냐에도 좌우되었기에, 굳이 심사를 받지 않고 2급인 채로 팔리는 뛰어난 술도 적지 않았습니다. 제도는 1992년(헤이세이 4년)까지 이어졌습니다.

긴조와 수출의 현대

긴 정체를 벗어나 사케가 다시 빛을 되찾는 것은 1980년대 후반의 일입니다.

계기의 하나가 ‘긴조슈’였습니다. 쌀을 고도로 깎아 저온에서 천천히 발효시켜 생기는 과실 같은 향과 섬세한 맛은, ‘사케란 이런 것이다’라는 선입견을 기분 좋게 배신했습니다. 때를 같이하여, 지방의 작은 양조장의 개성적인 술에 빛을 비추는 ‘지자케 붐’이 일어나, 각지의 양조장이 각광을 받습니다.

1990년 전후에는, 그때까지의 급별제도를 대신해 ‘특정명칭주’ 제도가 정착했습니다. 원료와 정미 비율, 빚는 법에 따라 준마이슈·긴조슈·다이긴조슈 등으로 분류하는 구조로, 소비자가 내용을 이해하고 고를 수 있게 된 의의는 큽니다.

한편, 양조장 수 자체는 크게 줄었습니다. 1970년대에는 3000을 넘던 청주 제조사가 2020년대에는 1400 정도까지 떨어졌습니다(국세청 「사케의 시오리(酒のしおり)」에서). 그래도 휴면하던 양조장의 재흥이나 완전한 신규 진입도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가업을 이은 젊은 만드는 이들이, 낡은 틀에 얽매이지 않는 술을 빚는 움직임도 활발합니다.

그리고 시선은 바다 밖으로도 향합니다. 21세기에 들어 사케 수출은 계속 늘어, 2022년까지 금액 기준으로 13년 연속 사상 최고를 경신했습니다. 2023년은 중국·미국 향(向)의 부진으로 410억 엔 남짓으로 한풀 꺾였지만, 1리터당 단가는 오히려 계속 오르고 있습니다(일본주조조합중앙회 통계에서). 뉴욕, 런던, 파리 — ‘SAKE’는 이제 그대로 통하는 세계어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해외에 양조장을 세우는 만드는 이들도 나타나, 사케란 무엇인가라는 물음 자체가 조용히 새로 쓰이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쌀과 물과 누룩. 이 세 가지의 조합은 2000년 전과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변한 것은 그것을 다루는 기술과, 마시는 사람들의 면면뿐입니다. 신에게 바치는 제물에서, 귀족의 술, 절의 술, 마을의 술, 그리고 세계의 술로. 오늘 밤 당신이 손에 쥐는 한 잔에도, 그 긴 시간이 조용히 녹아 있습니다. 천천히 입에 머금으면, 먼 야요이의 마을에서 이어져 온 이야기의 가장 새로운 한 줄에 자신이 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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